우리 집 아들이 대학 입학 선물로 280만 원짜리 노트북을 손에 넣었습니다. 인문계로 진학한 아들이 전공 서적을 읽고 리포트를 쓰는 데 왜 그렇게 고가의 기계가 필요한지, 저는 아직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사건의 시작은 남편이었습니다. 졸업식 날, 남편은 아들에게 최고급 모델들이 즐비한 카탈로그를 보여주었습니다. 고가의 제품들이 가득한 목록을 보며 아들에게 '직접 고르라'는 통 큰 제안을 한 것입니다. 결국 아들은 꽤 비싼 모델을 골랐고, 더 비싼 것도 있는데 자기는 싼 것을 골랐다며 오히려 아빠 돈을 아껴줬다는 듯 당당하게 생색을 냈습니다.
엄마인 제가 보기에 그것은 명백한 '과잉 소비'였습니다. 100만 원대면 충분한 전공인데, 굳이 필요 이상의 성능에 큰돈을 더 얹어준 셈이니까요. 제가 이 비효율적인 지출을 지적하자, 아들은 제 가슴에 못을 박는 소리를 했습니다.
"엄마는 기계에 대해 잘 모르잖아. 지금 수입도 없으면서... 우리 집 결정권자는 돈 벌어오는 아빠야."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남편이 벌어오는 소득이 헛되이 새나가지 않게 아끼고 살피며 가정을 경영해온 저의 세월이, '수입 없는 사람의 잔소리'로 치부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제가 아낀 작은 돈들이 모여 지금의 가정이 있는 것인데, 정작 아들은 눈앞에 보이는 아빠의 결제 금액만을 권위로 보고 있었습니다.
아들은 노트북으로 이런저런 취미 활동을 하겠다느니, 4년을 쓸 것이라느니 여러 이유를 댔습니다. 하지만 엄마인 저는 압니다. 그것은 논리가 아니라 그저 '가장 좋은 것'을 갖고 싶었던 욕심이고, 남편은 그 욕심에 '능력 있는 아빠'라는 자부심을 얹어 결제 버튼을 누른 것이라는 사실을요.
허탈함이 밀려왔지만, 저는 이 상황을 그저 서운함으로 끝내지 않기로 했습니다. 아들의 말대로 아빠가 우리 집의 결정권자라면, 그 결정권을 이제 저의 노후를 위해서도 사용하게 할 생각입니다. 자녀의 일시적인 호기심에 거금을 쾌척하는 결정권자라면, 평생을 헌신한 아내의 노후 연금 정도는 기쁘게 책임져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남편의 계좌로 저의 국민연금을 신청하고, 제 이름으로 된 '평생 월급'을 확정 지어야겠습니다. 아들의 노트북은 몇 년 뒤면 낡은 기계가 되겠지만, 제가 확보할 연금은 제가 숨 쉬는 내내 저의 자존감이 되어줄 것입니다.
수입 없는 엄마라고 결정권이 없다는 아들에게, 진짜 가정을 지키는 사람이 누구인지 행동으로 보여줄 차례입니다.